세상에서 사라져버린 20대
“20대의
증발 현상”이 사회 곳곳에서 발생하고 있다. 대학 캠퍼스에
있어야 할 20대들은 신림동과 노량진의 고시촌으로 숨어들어 가고 있고,
미국소 수입반대 촛불집회는 대학생들이 아니라 중고생들이 주축이 되고 있다. 20대들은 정치공간에서도
사라져 4월에 있었던 17대 총선의 20대 투표율은 20~30% 정도로 추정되고 있다. 기업들의 주마케팅 대상은 구매력이 있는 30대 초반의 미혼여성인
“골드미스”지 88만원
밖에 없는 20대들이 아니다.
이뿐만 아니라 20대들은 대중문화의 영역에서도 사라졌는데, 허지웅의 블로그에서 ozzyz 님은 “20대가 사라졌다”라는
글에서 이렇게 묻는다.
“언젠가부터 20대가 대중문화의 중심으로부터 완연히 멀어져버렸다. 극장을 가도 TV를 봐도 책을 읽어도 20대의 주체적인 시각과 행동을 다룬 콘텐츠를
찾아보기 힘들다. 20대는 모두 어디로 사라졌나?”
20대가
사라진 대중문화는 연예계까지 영향을 미쳐
, 이데일리 신문은
“연예계
20대 톱스타가 없다
” 라는 기사에서
“20대의 톱스타들이 연예계에서 사라지고 있다. 과거 연예계를 주름잡던 톱스타들의 연령층은 20대였다. 그러나 지금은 아니다. 스크린과 브라운관에는 30대를 넘어선 탤런트들이 톱스타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으며 가요계에는 '원더걸스'를 위시한 '빅뱅' 등 10대 아이돌 그룹만이 톱스타의 자리를 향한 독주를 이어가고 있다. 약관의
나이로 연예계를 종횡무진하며 대중들을 휘어잡던 20대 톱스타들의 명맥이 점차 끊겨가고 있는 것이다”
사라져버린 20대에 대해서 허지웅의 블로그에서는 이렇게 자답한다.
“이유는
간단하다. 아무도 20대의 이야기를 듣고 싶어하지 않기 때문이다. 하물며 20대 스스로도 자기 세대의 이야기를 외면한다. 그들에게 본인들의 세계를 성찰할 여유나 자존감 따위는 남아있지 않다. 오로지
끝없는 경쟁과 취업 전쟁만이 세계의 전부다. 그걸 그렇게 만든 건
20대 스스로가 아니다. 그런 세계가 주어졌을 뿐이다.”
“찌질한 88만원 세대” 는 20대만의 문제인가
시대는 정치에서부터
대중문화까지 모든 영역에서 세대로서의 존재를 상실하고 오로지 알바싸이트와 고시촌에만 출몰하는 20대들에게
“88만원 세대” 라는 명칭을 부여했고, “찌질한” 이라는 수식어를 붙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렇게 사라진 20대들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쩐의 전쟁”을 벌이고 있다. 등록금을 마련하기 위해 자신의 몸을 생체실험의 대상으로
제공하고, 편의점, 피씨방의 알바로 일하면서, 컵라면 하나와 김밥 한 줄로 끼니를 때우며 2평 남짓한 고시원에
고단한 몸을 누이고 있다. 쩐의 압박 앞에 20대만이 가질
수 있는 패기와 포부와 도전의식은 시급 3000원과 바꿀 수 밖에 없다.
이런
현실들은 20대들이 찌질해서 그런 걸일까? 아니면 신자유주의의
추세속에서 어쩔 수 없는 것일까? 그러나 어찌됐건 중요한 것은 20대들을
이렇게 찌질하게 살게 놔두면 그게 20대만의 문제로 그치지 않는다는 것이다.
미국에서 2004년 벤처로 시작해 현재 150억달러로 추산되는 시가총액의 “페이스북”의 창업자 저커버그는 현재
23살이다. 멀리 미국까지 갈 것도 없이 우리나라에서도
DAUM의 이재웅 씨나 한글과 컴퓨터의 이찬진 씨 등 우리나라 IT산업의 성장을 주도하고
이제는 큰 기업으로 성장한 벤처기업들의 창업주들은 대부분 20대에 도전을 시작한 이들이다. 하지만 이제 우리나라에서는 이런 도전정신을 가진 20대들을 찾아보기
힘들다. 그러면서 IT강국으로서의 우리나라의 모습은 추억이
되어가고 있다. 20대들만이 가질 수 있는 역동성과 창조성이 인터넷업계에 수혈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이런 현실은 단지 인터넷업계만의 문제는 아닐 것이다.
노르웨이나 스웨덴
등의 국가에서는 20대 국회의원이 5~10%를 차지하고 있다. 이들은 기존 정치권에 충격파를 던지며 활기를 불어넣고 있다. 하지만
대부분 40대 이상으로 구성되어 있는 우리나라의 기존 정치권에 쓴 소리를 날리며 새로운 바람을 불어넣을 20대 국회의원의 등장은 우리에게 아직 요원해보인다. 새로운 젊은
정치인들이 등장하고 있지 못한 현실은 기존 정치권이 국민의 요구와 상관없이 자신들의 정략적 이익을 취할 수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하다못해
연예계에서도 “다른 어느 분야보다 20대의 활기와 열정 그리고
창조성이 필요한 연예계에 20대 톱스타가 등장하지 못하고 있는 현재의 모습은 우리 연예계의 동맥경화를
암시하는 ‘위험신호’임에 분명하다” 고 걱정하고 있다.
정치건, 기업이건, 대중문화건 20대만이
가질 수 있는 창조성을 가지고 열정과 패기로 뭉쳐 도전하는 젊은이들이 곳곳에서 활기를 불어넣어야 각 영역은 혁신을 더해가며 그 사회가 건강하게
발전해 나갈 수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투자! 투자! 투자!
20대들이 소비의 중심에서 멀어졌다고 하지만, 여전히 20대들은 부모님에게서 받은 돈이건, 알바를 해서 만든 돈이든 상당한
돈을 쓰고 있다. 아니 쓸 수 밖에 없다. 등록금을 내야
하고, 영화, 도서 등 문화산업의 주요 소비층이며 전월세
집주인들을 먹여살리고 있다. 수많은 음식점들의 주고객 또한 20대들이다.
그런데 이들이
쓰는 돈이 3,40대가 쓰는 돈과 같은 성격의 돈일까
3,40대가 영화를 보는 데 쓰는 돈은 영화라는
문화를 ‘소비’하는 것이지만, 20대들이 영화를 보는 데 쓰는 돈은 다시 문화를 재생산해내는 데 쓰는 ‘투자’의 가치를 함께 가지고 있는 돈이다. 쉽게 말해 영화를 많이 봐야
새로운 영화를 만들어낼 수 있지 않겠는가. 20대의 영화학도들이 실험적 영화를 찍을 기회를 얻는 것은
고사하고 알바전선으로 내몰려서야 어디에서 참신하고 새로운 영화들이 창작될 수 있겠는가.
우리는 10대들의 교육에 쓰는 돈을 “소비”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20대들이 쓰는 대부분의 돈도
“소비”가 아니라 “투자”의 성격을 가지고 있는 돈이다. 80%의 젊은이들이 대학에 진학하는
현실에서, 대학수를 확 줄이거나 또는 “이제는 인적자본은
중요하지 않다”고 말할 것이 아니라면, 20대 초중반의 젊은이들은
여전히 투자의 대상이어야 한다. 이들의 교육과 문화와 주거에 쓴 돈은 다시 재생산되어 우리 사회로 환원될
것이기 때문이며 그래야 우리 사회의 건강성을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 돈은 개인의 영역으로만
놔둘 것이 아니라 우리 사회가 책임지는 돈이 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이를
좌파의 언어로 말한다면 ‘공공성의 확대’가 될 것이고 우파의
언어로는 ‘인적자원에 대한 투자’가 될 것이다. 어찌됐건 표현은 다를 지라도 미래를 책임질 이들에 대해서 사회가 일정한 역할을 해야한다는 점에서 동일한 의견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신자유주의에 관한 한 최고의 나라라는 미국의 대학들이 일정수준 이하의 생활을 하는
가정의 자녀들에게서는 등록금을 받지 않는 것이나, 사회민주주의의 나라인 북유럽의 대학들이 대학까지 무상교육은
물론 생활비까지 지급하는 것은 어떠한 이념과 노선하에서건 20대의 현재를 사회가 책임지지 않으면 국가
전체의 미래가 보장되지 않는다는 점을 공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
투자! 투자! 투자! 하면서
재생산될 수 없고 언젠가는 무너져내릴 수 밖에 없는 허황된 곳에 투자하지 말고 우리의 미래인 20대에
투자하자. 아니 제발 투자 좀 해라!! 그게 우리 모두의 미래를 위한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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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관적인 면이 다소 보인다만, 요새 신문을 읽어도 20대에 대한 얘기는 취업밖에 없다는 게 조금 안타까울 뿐입니다.